티스토리 뷰

글/일상

여유의 결핍

북트 윤현민 2017.04.27 00:00


11시 30분쯤 되어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항상 연트럴파크를 걸어다닌다. 짙푸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공원의 맨 끝까지 걸어가서 벤치에 앉는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니면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는다.

추워지면 앉아있기가 어려우니 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봄이 너무 짧은 탓에, 매일같이 점심을 일찍 먹은 것도 아니기에 몇 번 나오지 않았더니 이제는 햇살이 따갑다. 앉았는 동안 청바지를 계속 손으로 가리거나 쓸어 내려야 그 뜨거움을 조금은 면할 수 있다. 그래도 이게 좋지. 오늘은 마냥 앉아있고 싶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일만 아니었어도 거기에 계속 그렇게 죽치고 앉아 뜨거운 태양에 뎁혀진 청바지를 훑으며 지나가는 강아지도 보도 유모차 속 아이들도 보며 한량같은 오후를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으로 들어오며 이 사진을 찍었다. 서울에 살면서 이런 짙푸른 녹색은 볼 일이 별로 없다. 일하는 곳의 근처에 있으니 이렇게 나와보기라도 하는 것이지 굳이 찾아다니고 할 시간적 여력이란 없는 것이다. 그래, 다들 시간이 없어서 삶을 누리지 못한다. 나도 그렇고 일에 치인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여유의 결핍이 그 어느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자녀들과 함께 저녁을 먹지도 못 한다. 불안함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렇게 찾아 다니는 것이다. 더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사회에 불안함이 팽배하다.

스스로를 갖추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불안함에 맞서고 그것을 버티면서도 소신껏 삶을 살아 나가는 것. 지금 우리에겐 이 자체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불가능이다.

'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남동 헬로인디북스  (0) 2017.05.03
여유의 결핍  (0) 2017.04.27
댓글
댓글쓰기 폼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Total
12,664
Today
4
Yesterday
21